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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루지 Kludge – 감상평을 곁들인 요약 정리

「클루지(Kludge)」는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어떤 진화적 배경을 기반으로 했기에 조악한 허점으로 가득한 것인지 탐구하는 책이다. 뉴욕대학 심리학과 교수 개리 마커스가 저술했다. 최근 개인적으로 뇌과학에 관심이 많아진 터라 자청님의 추천 도서 중 하나로 접하자 마자 ‘아 이건 뇌과학이다! 이건 읽어야겠다!’ 싶어서 바로 밀리의 서재 책장에 담았다. 내용을 꽤 재미있게 읽었는데 다 읽고 나니까 저자가 말하는 내용이 진화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 이 글을 통해 나만의 1차 해석을 거친 감상평을 곁들여 내용을 요약 정리해보고자 한다.

클루지 도서 표지

클루지(Kludge)란?

클루지란 무엇인지 먼저 짚고 넘어가보자. 저자가 만들어낸 단어는 아니고 원래 있는 용어로 ‘조악한 해결책’ 또는 ‘작동은 하지만 볼품없는 무언가’ 를 뜻한다. 단어의 유래가 불분명하고 다양한 문화권의 여러 분야에서 오랫동안 쓰여온 단어인 모양이었다. 저자는 ‘클루지’라는 단어를 우리 인간의 뇌에 빗대어 표현했다. 우리의 뇌가 지구상의 모든 종을 통들어 가장 뛰어난 기능을 하는 똑똑한 기관임은 사실이지만, 결코 완벽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다소 지저분한 진화의 과정을 거친 탓에 볼품없고 조악한 헛점, 즉 ‘클루지’로 가득하다.

여기서 ‘지저분한 진화’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뇌는 적어도 150만년 이상 동안 진화해온 기관이다. 다만 저자의 말에 의하면 이 ‘진화’라는 것이 완전히 합리적인 방향으로 완벽하게 이뤄지는 것이 아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적응이 필요한 방향으로 덕지덕지 쌓여가며 이뤄지는 것이다. 인간의 뇌가 세 가지로 분류된다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책에 나오는 내용은 아니지만, 알려진 바로 인간의 뇌는 크게 [파충류의 뇌-포유류의 뇌-인간의 뇌]로 이루어져 있다. 태초에는 완전히 반사적으로 운동을 제어하는 파충류의 뇌만이 있었으며, 이후 세월이 흐르고 생물이 진화하면서 정서를 느끼는 포유류의 뇌가, 마지막으로 합리적인 사고를 도모하는 인간의 뇌가 생겨났다. 뇌가 진화하는 과정을 소프트웨어에 비유하자면 ‘리셋을 한 뒤 처음부터 다시 완벽하게 주조해 내는 것’ 이 아니라 ‘원래 버전 위에 새로운 버전의 새 기능을 이리저리 덧대는 것’ 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비단 뇌 뿐만 아니라 모든 신체 기관이 마찬가지다. 쓸모라고는 없는 사랑니, 퇴화되어가는 꼬리뼈, 체중의 부하를 비효율적으로 과도하게 받는 척추 등등…

파트 1: 인간의 뇌는 클루지로 점철되어있다

파트 1에서는 이렇게 다소 지저분한 진화의 과정을 거친 뇌,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난 수많은 헛점들을 낱낱이 파헤친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초장의 반사 체계-숙고 체계의 개념을 제시하는 부분이었다. 두 체계의 신경적 기초는 아주 다른데 위에서 말한 파충류의 뇌와 포유류의 뇌가 이 책에서 말하는 ‘반사체계’에 해당하는 것 같다. 소뇌, 운동통제와 관련된 기저핵, 정서와 관련된 편도체와 같이 진화적으로 굉장히 오래된 체계에 의존한다. 반대로 숙고 체계는 ‘인간의 뇌’를 뜻하며 전뇌와 전전두피질에 근거한다.

카페에서 읽는 클루지

나는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뇌에 대해 공부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파트를 읽으면서 감명을 많이 받았다. 기분 탓인지 내가 전전두를 의식해서인지, 이 부분을 읽고 나서 너무 띵한 나머지 전전두피질 부근(?)이 지끈거리는게 느껴질 정도였다. 너무 신기한 나머지 원희에게 전화를 걸어 “내 뇌가 변화하고 있어!” 라는 둥 이상한 소리를 했고 원희는 당연히 폭소했다. 여기서 생활 꿀팁. 전전두를 의식하면서 인간의 사고를 하려고 생각하면 실제로 그곳에 자극 같은 게 느껴진다. 믿거나 말거나ㅋㅋ

파트 2: 클루지를 이겨내기 위한 열 세가지 방법

각설하고! 파트 2의 이야기다. 저자는 인간의 뇌가 어떤 클루지로 점철되어있는지 조목조목 따져가며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뇌의 한계점을 어떻게 다루며 극복해낼 수 있는지를 열 세 가지의 방법으로 제시한다. 사실상 이 책을 읽는 목적과도 같으며 우리들에게 직접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파트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첫 번째 파트를 먼저 읽는 게 좋긴 하다. 구체적인 목차는 글 맨 아래에 덧붙여두겠다. 파트 2를 읽으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 몇 가지를 개인적인 생각과 함께 남겨보려고 한다.

📌아홉 번째 방법: 누군가 여러분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라

누군가 여러분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라

조금 웃긴 이야기다. 아니 사실 이 부분을 읽고 약간 소름이 돋았다. 그 이유인 즉슨 실제로 내가 요즘 쓰고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금쪽같은 내 새끼’나 ‘결혼지옥’처럼 우리 집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내 생활이 방송에 송출된다는 상상이다. 스스로가 왠지 나태해질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정말 효과가 있었다. 내 일상을 제 3자가 편집하고, 자막을 달고, 시청자에게 내보낸다고 생각하니까 신기하게도 원래 내가 의도한 계획대로 딱딱 행동하게 됐다. 그리고 일상이 괜시리 더 재미있어지는 건 덤이다. 쓰면서 좀 웃기긴 한데 어디서 알려준 건 아니고 그냥 스스로 그렇게 상상했다. 그런데 정확히 아홉 번째 조언에서 내가 사용한 방법과 정확히 일치하는 이야기가 나와서 진짜 신기하고 놀라웠다.

📌두 번째 방법: 문제의 틀을 다시 짜고 질문을 재구성하라

이 비누는 99.4% 순수한가, 아니면 0.6퍼센트 유해한가? '안락사' 법규를 살인적인 의사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위엄 있게 죽는 것을 허용하는 방법으로 볼 것인가? (중략) 어떤 문제를 다른 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으면 최대한 그렇게 하라. 맥락 기억은 우리가 언제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감을 뜻한다. 우리가 한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느냐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다시 우리가 어떤 대답을 찾아내느냐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문제를 하나 이상의 방식으로 물어보는 것은 이런 편향을 교정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딱 누군가가 떠올랐다. 과거 생각이 어리고 편향되었던 나의 헛점을 보완해준 사람. 사람의 뇌는 기본적으로 맥락에 기반한 사고를 하며 이는 꽤 자주 비합리적인 판단을 낳는다. 그 사람이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결정된다. 그리고 그 생각은 다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영향을 미치고, 그렇게 계속해서 편향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을 겪는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편향되고 생각이 굳어진다는 말은 이런 원리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아가 유유상종이라는 말도 이런 측면에서 생겨난 것 같기도 하다. 누구나 자신의 편향된 생각에 부합하는 부분만 취하려고 하는 확증 편향이라는 클루지의 영향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런 측면에서, 때로는 자신과 아예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과의 교류는 정신에 무척 이롭다고 생각한다. 나한테는 그 사람이 원희였다. 나랑 닮은 듯 하면서도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랐던 원희는 나에게 어쩌면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렌즈를 선물해 준 셈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두 세계의 마찰에서 오는 껄끄러움이 느껴졌지만 원희와 이야기를 많이 하고 지내면 지낼 수록 내 가치관의 어떤 부분이 유연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만의 렌즈로 세상을 보며 스스로 받아온 고통에서 정말 많이(거의) 벗어났다. 내가 원희에게 가장 감사하는 점 중 하나다. 자신만의 렌즈로 세상을 보는 것은 때때로 위험하다. 나만의 편향된 생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의 정신은 성숙하는 것 같다. 사고는 균형을 찾을수록 풍요로워진다.

📌여섯 번째 방법: 막연히 목표만 정하지 말고 조건 계획을 세워라

"체중을 줄이겠다." 또는 "이 논문을 마감 시한 전까지 끝낼 것이다." 와 같이 막연하게 목표를 정하면 그것을 지키기가 거의 불가능할 때가 많다. (중략) 심리학자 피터 골위처의 연구에 따르면 목표를 구체적인 '조건 계획'의 형태로 바꿀 경우에, 이를테면 "감자튀김을 보면 그것을 멀리하겠다."와 같이 "X이면 Y이다."의 형태로 바꿀 경우에, 성공할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고 한다. (중략) 잘 짜인 조건 계획은 이러한 제한을 비켜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이런 계획을 통해서 추상적인 목표가 선조 체계도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즉 모든 반사의 기본이 되는 "X이면 Y이다."의 형태로 변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 오래된 체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 때, 우리가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떠오른 도서가 있다. 리차드 와이즈먼의 ’59 seconds’ 라는 책인데 사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 위한 지침이 담겨 있다. 사실 앞부분만 좀 읽다 말았지만 내가 읽었던 부분에,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자신의 의지만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뉘앙스의 메시지가 있었는데 이 부분이 딱 떠오른 것이다. 진화심리학에 기초한 인간 뇌의 한계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두 책이 일맥상통하지않을까? 아마 내가 미처 읽지 못한 뒷부분을 읽어나가기 시작한다면 이 메시지에 담긴 깊은 뜻과 뒷받침되는 수 많은 사례를 접할 수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읽다 만 이 책을 다시 집어 들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번역본이 절판되어서 원서를 구매했는데, 아무래도 읽어나가는 데 피로감이 느껴지니까 읽다 말았던 것 같다. 언어 습득을 게을리 한 나,, 반성! 꼭 다 읽고 감상평을 쓰도록 하겠음.

합리적으로 되려고 노력하라
(보너스 사진. 첫 문단에서 웃음 터짐ㅎㅎ)

마치며…

아.. 쓰다 보니까 너무 길어진 것 같은데 사실 하고 싶은 말은 훠얼씬 많다. 그런데 그거 다 담아내려면 밤을 꼴딱 새야 할 거고 글은 쓸데 없이 너무 길어져서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므로 이만 줄여보도록 하겠다. 파트 1 부분에 뇌 그림도 추가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늦은 관계로 생략! 여튼 나에게 [클루지]는 여러모로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뇌 과학, 진화 심리학을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


[부록] 클루지(Kludge) 완전 요약하기

파트 1: 인간의 뇌는 클루지로 점철되어있다.
확증 편향 / 정신적 오염 / 닻 내림 / 틀 짜기 / 부적절한 자기통제 / 반추의 순환 / 초점 맞추기 착각 / 동기에 의한 추론 / 잘못된 기억 / 제한된 정신능력 / 애매한 언어 체계 / 정신장애

파트 2: 클루지를 이겨내기 위한 방법을 13가지 제안한다.
1. 되도록 대안이 되는 가설들을 함께 고려하라
2. 문제의 틀을 다시 짜라. 질문을 재구성해라
3. 상관관계가 곧 인과관계임은 아니라는 걸 명심하라
4. 당신이 가진 표본의 크기를 잊지 마라(큰 수의 법칙)
5. 자신의 충동을 미리 예상하고 앞서 결정하라
6. 막연히 목표만 정하지 말고 조건 계획을 세워라
7. 피로하거나 마음이 산란할 때에는 되도록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
8. 언제나 이익과 비용을 비교 평가하라
9. 누군가 여러분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라
10. 자신에게 거리를 두어라
11. 생생한 것, 개인적인 것, 일화적인 것에 현혹되지 마라
12.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라
13. 합리적으로 되려고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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